서정주의 자화상을 보자.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으련다.


서정주에게서 죄인을 읽는 사람은,
그 자신이 바로 죄인의 속성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의 입에서 천치를 읽는 사람은 그 자신이 천치라 본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


사람들은 흔히들 생각한다.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하는 걸 보니 참 게으르구나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참 나쁘다.

자신에게 게으르다는 관념이 있고 나쁘다라는 분별심이 있기때문에 그 사람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판단을 받지 않으려거든 판단하지 말라
너희가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너희가 판단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


온전한 인간은 어떤 죄인도 어떤 천치도 읽지 않는다.
(하지만 이 판단하지 말라는 말 또한 역설적으로 판단이다.
그러니 무주상보시가 어려운 거다.
왼손이 하는일을 오른손이 모르게하라 라는 뜻도 비슷하다.)


사람들의 인식작용중에 판단은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사물을 보고 크다 작다. 크기를 재거나 사람을 보고 아름답다 추하다 하는 미추판단
악하다 선하다 하는 판단 등을 하며 사람들은 살아 간다.
그런대 사실 크고 작은 것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크고 작은 것은 상대적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크기라는 것이 있을 뿐이다.
같은 크기의 사물을 보고 어떤 사람은 크다 어떤 사람은 작다 한다.
크기라는 것이 있을뿐 작다크다 하는 것은 경험에서 일어나는 이원성적인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다.


(하지만 이 글자체도 모순이다. 까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해놓고 내가 지금 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수같은 성자가 이런말을 해야 토를 안달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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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시 詩 이야기 2019.02.11 00:37

개미를 처음 밟아 죽인 이후로 나는 위독해져갔다.

처음에는 천식으로 나아가 폐병으로,

아마도 그 개미가 나의 폐를 갉아먹고있는 것이리라.


세번째 닭이 울었을 때,

나는 나의 믿음을 부인하였다.

사실은,

가시가 찌르는 듯한 아픔은 폐가 아니라 폐부로부터 였음을

나를 갉아 먹는 것은 개미가 아니라 위선과 독선이었음을

이 모든 것이 오만과 자만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는 다짐했다.

더 이상 선함만을 말하며 나의 내면에 도사리는 어둠을 부정하지 않겠으며

선은 더 이상 선이 아니고 악은 더 이상 악이 아님을 이해하겠다고.


그리고,

다시는 맹세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지 않겠으며,

다시는 머리를 깎지 않겠으며,

다시는 갑오년을 이야기하지 않겠으며,

다시는 네가지 경서를 가까이하지 않겠으며

다시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또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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